수필세상/좋은수필 3 (1000)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잠 / 이은희 잠 / 이은희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흰 깃발이다. 옆에선 파란 천막이 공중에서 노닌다. 시선을 낮추니 바닥에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가만가만 다가간다. 발목 물 찰랑대는 물결 소리가 전해질까 조심스럽다. 드디어 그의 자태가 드러난다. 썰물로 드러난 바닷길 위에 자신의 안방.. [좋은수필]호작도(虎鵲圖) / 전성희 호작도(虎鵲圖) / 전성희 선조님들은 정초가 되면 세화歲畵를 그렸다. 잡귀를 쫓고 액을 막으며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용 해태 독수리 호랑이 개 닭 등의 그림을 그려 문에 붙이고 금줄이나 가시가 있는 엄나무와 호랑이 뼈 소의 코뚜레를 문주위에 얹거나 걸었다. 호랑이는 잡신을 쫓으.. [좋은수필]이름들 / 윤근택 이름들 / 윤근택 참말로, 그들은 내 가슴속에서 명멸(明滅)하던 불빛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내 가슴속에서 뜨고 지던 별들이었습니다. 내가 여태 간직한 이름들은 이제 여남은 개에 불과합니다. 본디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는 않았던 편입니다. 오늘밤 그 남은 이름들 가운에서도 한, 둘.. [좋은수필]뱀 설(說) / 최근복 뱀 설(說) / 최근복 302호 할머니는 집을 나서며 공짜로 온천을 하게 되었다고 들뜬 기분이었다. 그런데 웬걸, 해가 기우는 저녁나절에 그만 얼굴이 반쪽이 되어 돌아왔다. 온천은커녕 근처에도 못 갔다니 궁금했다. 숲이 우거진 외진 산골에 사슴 뿔을 파는 악당의 한 패가 있을 줄 누가 알.. [좋은수필]하늘 끝에 걸린 초가삼간 / 홍도숙 하늘 끝에 걸린 초가삼간 / 홍도숙 "얘들아. 도랑 건너 집에 개초(이엉을 새로 이는 일)하는 날인데 이삭 주으러 가자." 장난스러운 박새 한 마리가 앞장서서 휑하니 날아가자 이내 졸개들이 왁자지껄 뒤따른다. 굳이 개초하는 데까지 가서 이삭줍기를 안 해도 먹을거리가 지천인데 새들은.. [좋은수필]칡 / 박현숙 칡 / 박현숙 상처 입은 어린 생명들이 녹색피를 흘리며 신음하다 서서히 일어선다. 한낮의 열기가 섞인 쌉싸래한 풀내음은 코띁에 아찔하게 스며든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것들은 쓰러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으깨어지고 다시 일어서보려 애써보지만 내리쬐는 태양이 마지막.. [좋은수필]머리 자른 날 / 구자분 머리 자른 날 / 구자분 아직 멀었다. 나를 버리기란, 나를 내려놓기란 도대체 얼마나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가. 시퍼렇게 살아서 꼿꼿하니 치켜들고 일어나는 자아. 누구나 자존감이 상처 입을 때 불쾌하다 못해 분노가 일게 마련이다. 그 순간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 [좋은수필]벼와 피 / 주인석 벼와 피 / 주인석 처서가 지나면 논에는 벼보다 피가 더 신이 나 있다. 밥을 먹고 나가보면 한 뼘씩 자라 있을 정도로 피는 성질이 급하다. 벼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서 벼가 익을 쯤에 피는 종족번식을 끝낸다. 그래서 열매가 익기 전에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일손이 부족한 농..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1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