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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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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쟉별 / 박옥근 쟉별 / 박옥근 수평선에 걸려 있는 하늘은 구름 한 조각 없이 말갛고,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물결마루는 뱃사람의 억센 팔뚝처럼 힘이 넘친다. 쏴쏴 밀려오는 파도가 빚어낸 하얀 물거품은, 해안선을 물고 있는 모래사장과 조약돌밭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청량한 바람을 타고 오는 비릿..
[좋은수필]속삭이는 벽 / 임혜숙 속삭이는 벽 / 임혜숙 아주 가끔, 누군가와 꼭 껴안는 꿈을 꾸곤 한다. 그가 누구인지, 내가 그를 안은 것인지 그가 나를 안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왠지 행복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가슴에 든 얼음이 금방 녹아내리는 듯 따뜻한 느낌 때문일 게다. ‘허깅(hugging)’..
[좋은수필]해질녘 / 김창식 해질녘 / 김창식 해질녘이면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곤 한다. 공원이라야 복지시설에 면한 작은 쉼터 같은 곳이다. 할아버지 세 분이 벤치에 앉아 서산에 걸린 해를 바라본다. 초점 없이 퀭한 눈의 노인들 사이에 오가는 말은 없고 각자 생각에 잠긴 듯 정물화처럼 앉아만 있다. '푸..
[좋은수필]천익이 / 박경주 천익이 / 박경주 발로 차 먹고사는 사람이 있었다. 축구 선수는 아니었다. 저잣거리의 단속꾼, 천익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몇 차례나 긴 시장거리의 난전을 오갔다. 그가 하는 일은 군홧발로 좌판을 냅다 차는 것이었다. 소위 불법 상인들을 내쫓는 단속반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
[좋은수필]숨어 피는 꽃 / 김미옥 숨어 피는 꽃 / 김미옥 우리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직은 여린 봄 햇살이 베란다의 유리창으로 부드럽게 퍼지는 아침나절이다. 약속이 있어 일손을 서두르던 나는 예기치 못했던 얼굴과 마주치고 어쩔 줄 몰랐다. 꼭 일 년만의 만남이다. 일 년이란 시간의 개념보다는 아무런 수..
[좋은수필]맷돌 / 이순금 맷돌 / 이순금 드르륵 드르륵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그 속에서 갈리고 있는 곡식의 종류를 짐작할 수 있다. 단단한 날팥이나 녹두를 탈 때는 그 소리가 크고 요란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에 볶은 쌀이나 밀, 수수를 곱게 갈아낼 때는 소리가 온화하다. 가루를 거칠게 탈 때는 한 주먹씩 ..
[좋은수필]라데팡스의 불빛 / 맹난자 라데팡스의 불빛 / 맹난자 파리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두 곳에서 체재했다. 처음 일주일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몽파르나스 근처였고, 그 후 집을 얻어 나간 곳은 전위적인 신도시 라데팡스였다. 샹젤리제 대로의 개선문을 빠져 나와 그 뒤로 곧바로 뻗어 있는 그랑드 아르메 대로..
[좋은수필]북 / 신영기 북 / 신영기 내 고향 칠월은 논매기 철이었다. 머슴이 두 명이나 있는 부잣집 논매기가 끝나는 날은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상쇠의 꽹과리 신호를 따라 북과 장구와 징이 어울리는 농악놀이가 펼쳐졌고, 누렁소 등에 탄 상머슴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넓은 마당이 농악놀이 무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