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997)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도다리의 친절 / 손광성 도다리의 친절 / 손광성 도다리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쪽으로 몰려 있는 두 눈 때문에 그렇고, 냉소하고 있는 듯한 삐딱한 입 때문에 또 그렇다. 게다가 납작 엎드린 몸매는 무엇을 위한 겸손인지 모르겠다. 도다리를 보고 있으면 조금 답답하다. 수조水槽바닥에 배를 깔고 있으면서 통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표정이다. 내가 자기를 관찰하고 있어도 좋고 싫증이 나서 돌아서 산다 해도 그만이다. 눈을 맞추려 해도 시선을 주는 법이 없다. 녀석의 눈은 언제나 나의 어깨너머로 허공을 보고 있다. 때로는 내가 답답해서 손가락으로 그의 눈을 겨냥하고 찌르는 시늉을 해 보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내 손가락과 자기 사이에 유리라는.. [좋은수필]대나무의 멋에 대해서 / 김창현 대나무의 멋에 대해서 / 김창현 어릴 때는 대나무를 한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대나무는 그저 생활용품 만드는 재료 거니 생각했다. 아이들은 대나무로 포구총, 방패연, 낚싯대 만들었다. 어른들은 울타리, 빗자루, 복조리 만들었다. 장에 가면 죽부인, 대삿갓, 대평상 같은 것이 많이 눈에 보였다. 그러다가 대나무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백팔십도 발상 전환한 것은 어느 봄날 교또에서다. 차창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즈막한 구릉에 매화가 피어있었다. 비 젖는 매화를 감상하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 대나무다. 대밭은 하얀 안개에 덮혀 있었다. 댓잎에 맺힌 이슬은 은구슬이 되어 땅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미풍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휘어진 대나무는 선녀가 안갯속에서 섬세한 옷자락을 흔들며 춤추는 .. [좋은수필]빗살무뉘 토기 / 허이영 빗살무뉘 토기 / 허이영 며칠 몸살을 앓고 나니 입맛이 까칠하다. 입맛 없는 데는 병아리 궁둥이만 따라다녀도 낫다 하여 명절에 시골에서 가져온 주먹만 한 동치미 무를 한 개 꺼냈다. 절반 뚝 잘라 나박나박 썰어 말간 유리그릇에 담고 칼칼한 동치미 국물을 한 국자 떠 담았더니 갑자기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며 식욕이 돌았다. 깔깔한 입안에 동치미 국물 한 수저를 떠 넣었으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맛이 아니다. 이상스레 항아리를 떠나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겨우내 층층이 쌓인 두꺼운 얼음 아래 삭여낸 슴슴한 깊은 맛이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으면 본래의 맛이 감해진다. 어디 동치미 맛뿐이랴. 질박한 옹기 항아리는 돌담 아래 있어도 정겹고, 아파트 베란다 구성진 곳으로 밀려나 있어도 초라하지 않다. 이 땅 어느.. [좋은수필]감 / 이숙희 감 / 이숙희 고향집 마당에는 감나무 세 그루가 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휘어져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늘 애잔하다. 어머니는 감이 조금씩 붉은빛을 띨 때부터 감 추수를 걱정하신다. 더욱이 바람이 서늘해지면 무서리가 내리기 전에 감을 따야 한다고 조바심을 치며 채근하지만 우리 오 남매는 누구 하나 시원스럽게 그 걱정을 덜어주는 이가 없다. 남동생은 직장 업무에도 일손이 모자라는 형편에 그 먼 길을 달려가 기름값이나 나오겠냐고 이참에 나무를 베어버리자고 한다. 딸들 역시 하나같이 시큰둥하니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버린다. 아버지와 사별하면서도 담담하던 어머니는 가을만 오면 못내 서운한 기색을 보인다. 감나무는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심은 나무다. 당신의 생이 끝자락에 도달했음을 .. [좋은수필]시김새 / 조일희 시김새 / 조일희 클럭,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버스 한 대가 정류장으로 들어선다. 낡은 버스는 퍼런 칠이 벗겨진 자리에 더께처럼 벌겋게 녹이 슬어있었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려온 세월에 지쳐 대꾼해 보였다. 앞문과 뒷문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내린다. 내리는 사람들은 천천히 발을 옮기거나 손잡이를 의지해 조심스레 움직이는 노인들뿐이다. 노인들은 거개가 낡은 보퉁이를 이고 지고 있었다. 세월의 궤적으로 까뭇해진 저 보따리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묵은 세월에 곰삭은 구수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빛바랜 보퉁이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이 정직한 땀으로 환산되어 묵직해 보였다. 구릿빛 주름 아래로 노인들의 지나온 삶이 보인다. 푸르른 청춘부터 저승꽃이 핀 지금까지 동이 트면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좋은수필]버팀목 / 김영관 버팀목 / 김영관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다섯 살 둘째 손녀가 친구 집에서 놀다 이층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가 방바닥에 부딪혔다는 말에 119를 부를 사이도 없이 차로 달렸다. 3km 정도 거리인데 천 리나 되는 것처럼 멀었다. 왜 그리 신호등은 많은지, 왜 그리 차들은 많은지, 왜 그리 앞에서 비실대는 지, 거기에다 끼어드는 차하며, 횡단보도 신호마저 도와주기는커녕 방해만 해댔다. 나는 대학병원으로, 딸은 준 종합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의견을 나누다 대학병원은 접수 및 준비 과정이 너무 길다는 딸의 판단에 동의했다. 아이가 CT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큰손녀와 함께 대기실 의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환자복을 입은 십 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내.. [좋은수필]동백꽃이 아름다운 이유 / 최원현 동백꽃이 아름다운 이유 / 최원현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한 줌 가득 손에 쥔다. 꽃이 져버린지도 몇 날이 지난 듯 싶은 동백나무 숲은 저녁 해으름녘 밭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오월 하늘을 이고 있었다. 전라북도 고창의 선운사, 동백꽃이 너무나도 유명하여 숱한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요, 서정주 시인의 시로 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그 동백을 보러 찾아 왔는데 공교롭게도 꽃은 이미 져버렸고, 남도의 멋과 정감을 맘껏 펼쳐내려 매년 5월 5일을 기해 연다는 동백꽃 축제가 오늘이라지만 금년은 철이 맞지 않아 동백꽃도 없는 동백연冬栢宴이 되고 있단다. 선운사 동구를 지나고 일주문을 거쳐 만나는 화엄동백, 선운사의 동백꽃은 4월 초에 점점이 피어나 5월 초에 핏빛 꽃의 바다를 이루며 대웅전을 .. [좋은수필]수필은 내 삶의 지침서 / 김재희 수필은 내 삶의 지침서 / 김재희 어느 산골짜기 바위틈에 새치름히 피어 있는 구절초가 눈길을 잡습니다. 찬 이슬 살짝 내리기 시작하는 때에 피는 구절초의 꽃잎은 코끝이 싸한 향기를 품고 있지요. 건드리면 툭 터질 것 같은 울음 방울을 안고 있는 듯 모습이 참 애잔합니다. 구절초 속에 애틋한 기억이 숨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선 휴일이면 산에 올라 구절초를 캐러 다니셨습니다. 그리 흔치 않는 꽃이라서 조금씩 모아 말려두면 어머니는 그걸 고아 환을 지어 내 약을 만들었지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약인 줄 몰랐습니다. 병약한 딸을 위해 산골짜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셨을 아버지의 노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줄줄이 놓여 있는 약병들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구절초 약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거라는 생각에 몰래.. 이전 1 ··· 4 5 6 7 8 9 10 ··· 1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