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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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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달이 떠 있는 쪽으로 가시오 / 안도현 달이 떠 있는 쪽으로 가시오 / 안도현 스물 몇 살 때쯤에 나는 시골에 사는 친구네 집을 찾아가다가 밤에 길을 잃었다. 여치 소리가 귓가에 톱밥처럼 쌓이는 가을이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친구네 집 불빛이 보이겠거니, 하고 산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그만 길을 잘못 접..
[좋은수필]멀고 눈물겨운 나의 꿈 / 박범신 멀고 눈물겨운 나의 꿈 / 박범신 2월에 10여 년 이상 재직하고 있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직을 사직하고 이곳, 원주 근교의 오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토지문학관 방 한 칸을 얻어 내려왔다. 교수직을 그만두는 일이나 토지문학관으로 내려오는 일이나 쉽진 않았다. 작가이기 이전..
[좋은수필]목화밭을 지나며 / 마종기 목화밭을 지나며 / 마종기 미국 남부의, 사투리 심하고 느리고 게으르고 후텁지근하게 무더운 조지아 주를 잘 알고 계시는지? 플로리다 주 위에 감자떡같이 앉아 있는 농투성이 인상의 조지아주. 남북 전쟁 때는 남부군의 사령부가 있었고 그래서 더 잘 알려진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좋은수필]투우 / 맹난자 투우(鬪牛) / 孟蘭子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찬물로 몸을 씻고 나와 리모컨으로 TV의 아무데나를 누른다. 권투가 나왔다. 두 남자가 육탄적인 싸움을 벌인다. 때리고 맞는 행위, 무더위의 권태를 한 방으로 날려 버리기엔 괜찮은 방법인 것도 같다. 마침 라디오에서 음악의 곡명이 바뀐다. ..
[좋은수필]터널 / 신성애 터널 / 신성애 전광판에 도착하는 열차가 표시되면서 빨간 불빛이 깜박거린다. 나는 대합실 바닥의 무늬를 헤아리며 속절없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윽고 개찰구로 사람들이 밀려오고 오락가락하던 내 발길이 분주해진다. 엇비슷한 얼굴들이 다양한 표정을 하고 썰물이 되어 빠져나온다...
[좋은수필]황혼 / 배형호 황혼 / 배형호 돈 봉투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노란봉투에 공사대금을 넣어서 주었다. 돈은 세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냥 공손하게 받아왔다. 할머니가 세어서 건넨 돈을 할아버지가 받아서 다시 확인하고 넣어주는 돈을 또 셀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봉투속의 돈을 꺼내어 본다. 수..
[좋은수필]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 전혜린 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 전혜린 아스팔트 킨트(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의 고향 없는 아이들)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쓰일 수 있는 명칭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이북의 끝인 신의주에서 보낸 2년간은 내 어린나이와 함께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 때문에 고향이라는 글자를 볼 ..
[좋은수필]레오폴드가의 낙엽소리 / 전혜린 레오폴드가의 낙엽 소리 / 전혜린 사람마다 외국에 대한 반응이 귀국 후에 다르다 극도로 동화되어서 외국인의 생활 내지 사고 방식과 다른 점이라곤 외모를 제외하고 개무(皆無)해지는 사람으로부터 극단적인 (그리고 돌발적인) 학문 순수주의를 맹신하게 되며 외국 사상에 불타게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