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997)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동박새 / 김길영 동박새 / 김길영 곤줄박이가 어떻게 생활하고 사는지 나는 잘 모른다. 모양새가 비슷한 동박새는 조금 친한 편이다. 동박새를 처음 만난 것은 진도 첨찰산 쌍계사에서였다. 내가 그 절에서 봄 한 철 기거하는 동안 동박새와 아침저녁 숨바꼭질 했던 터라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동백꽃은 동박새를 떠올린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빨거나 열매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진도 쌍계사 주변에는 수 백 년 묵은 동백 숲이 하늘을 가린다. 절 뒤편 첨찰산 ‘천년의 숲’에 들어가 보면 희귀종 수종들과 동백 숲이 장관을 이룬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동백꽃이 피고 진다. 동박새의 등은 녹색이고 날개와 꼬리는 녹갈색이며 아래꼬리를 덮는 깃은 황록색이다. 배와 눈 둘레는 하얗다. 그들은 번식철 외에는 모여 산다. 주로 나무.. [좋은수필]지팡이 / 김규련 지팡이 / 김규련 산에 오를 때 지팡이는 힘이 된다. 가파른 산에선 더욱 그렇다. 나는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산에 오르고 있다. 쿵쿵 지팡이를 짚고 걸으니 발이 한결 가볍다. 내려올 때는 지팡이가 큰 의지가 되리라. 한줄기 바람이 지나간다. 잇따라 낙엽이 쏟아져 흩날린다. 여름 한철 그토록 무성하던 잡초들은 마른 잎으로 땅 위에 누워 있다. 산에 있는 온갖 나무들은 저마다 기도의 자세로 묵묵히 서 있다. 늦가을 산중의 적막을 뚫고 지나가는 산행은 차라리 구도행각 같다고나 할까. 나는 지팡이가 연신 땅에 부딪치는 소리에 마음을 모으고 무심으로 걷고 있다. 한순간의 무심을 무심이라 생각하는 찰나에 마음의 바다엔 온갖 상념의 물결이 인다. 지팡이를 짚고 지구 한 모서리를 걷고 있는 자화상이 눈앞에 일렁인다. .. [좋은수필]못 믿을 당신 / 김상영 못 믿을 당신 / 김상영 부산 사는 큰딸이 제 어미와 나를 다녀가라더니 마사지를 예약한 모양입니다. ‘딸 많으면 비행기 탄다.’는 우스갯소리가 빈말이 아닙니다. 고작 2시간 만에 십만 원이 넘는 소비를 한다는 건 아내나 나로선 언감생심입니다. 호강이 좋다 하나 쌀이 몇 말이고 고추가 몇 근입니까. 딸내미 딴엔 효도로 알고 뿌듯해하니 못 이기는 척합니다. 치솟는 승강기와 함께 신분마저 수직으로 상승하는 듯합니다. 기분이 애드벌룬처럼 붕 뜹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실내에 아로마 향이 가득합니다. 계산을 마친 딸내미는 즐거운 시간 되시라며 사라집니다. 우리 딸이라도 멋집니다. 나는 마사지 복을 받아 들고 옷장 앞에서 난감합니다. 팬티까지 벗어야 할지 어정쩡해서요. 어리벙벙한 순간 커튼 속으로 손이 쑥 들어.. [좋은수필]세호細虎 / 김재희 세호細虎 / 김재희 무덤의 표지 석물인 망주석에는 묘한 형상의 조각물이 있다. 언뜻 다람쥐 같지만 특정 동물이 아니라 상상의 동물이란다. 그 형상이야 어떻든 명칭만은 분명히 세호細虎다. 가늘게 새긴 작은 범이라는 뜻. 봉분 좌우 망주석에 새겨진 세호의 머리 방향은 서로 반대이다. 한쪽은 위로 올라가는 방향이고 한쪽은 밑으로 내려오는 방향이다. 그 이유는 여러 설이 있는데 올라가는 세호는 영혼이 바깥세상으로 나들이 나오는 것이고 내려가는 세호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는 뜻이란다. 또는 망자 집안이나 나라의 기운이 너무 뻗치면 내려 눌러주고 너무 저조하면 높여주기 위한 상징이란다. 어떻든 세호는 액과 잡귀를 막거나 음양 조화의 장치물로 해석하면 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무심히 보아왔던 망주석의 형상에 .. [좋은수필]결혼사진 / 류영택 결혼사진 / 류영택 골목을 들어서는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한잔 하셨는가 보다..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아저씨는 퇴근길에 맨 정신으로 오는 날이 별로 없다. 하루 종일 연탄재를 차위에 던져 올리고 넝마를 줍다 보면 목이 컬컬해 한 잔해야 하고, 굿은 일을 하는 만큼 남에게 안 좋은 소리라도 듣다보면 술 생각이 간절하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남에게 싫은 짓 않는 사람이 이런 일 저런 일로 술만 한 잔 걸치면 부끄럼은커녕 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른다. 한 번도 끝까지 부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 아저씨의 애창곡이다. 대문을 붙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저씨를 부축해서 집안으로 들어온다. 입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풍겨오고, 옷에는 악취가 베어난다. “문간방 류 씨, 방으로.. [좋은수필]약산은 없다 / 김서령 약산은 없다 / 김서령 오늘 낮 백석의 시를 읽었다. 내게 백석의 시는 읽는다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다. 소설처럼 죽 페이지를 넘겨가는 방식이 아니고 시집을 눈앞에 두고 집히는 대로 뒤적거리다 맘 가는 아무 페이지나 코를 박고 들여다보다가 또 저만치 던져놓는 식이다. 그러니 읽는 게 아니라 코를 박는다거나 저만치 던져놓았다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읽다말고 저리로 던져둔다는 건 시가 별볼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읽기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가슴속이 뻑뻑하게 격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걸 다스릴 시간이 필요해 시집을 저만치 던져놓게 된다. 이것도 노화의 일종인지 버거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꼭지점까지 올라가지 않으려 애쓴다. 8부쯤에서 멈추려 애쓴다. 그러자면 읽던 책을 저만치 던져두는 게 상수.. [좋은수필]시련 2 / 김영관 시련 2 / 김영관 마침 일요일이었다. 강릉에서 새벽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보름 동안 비워둔 집은 엉망이었다. 종일 청소에 매달렸다. 아이도 쌕쌕거리며 잠을 자고 오랜만에 집사람이 해주는 하얀 쌀밥에서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이젠 살 것 같았다. 이것이 사는 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사람은 저녁밥을 몇 술 뜨지 못했다. 난 머릿속이 복잡했다. 보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마음고생이 심해서일까, 아니면 어디가 큰 탈이라도 났단 말인가? “소화제 사 올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겨울 동 잠바를 걸치고 면 소재지로 뛰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겨울 강원도 산간 밤바람은 상상 그 이상으로 차가웠다. 약방에서 활명수 한 병과 소화제 몇 알을 사서 문을 나서다 옆 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좋은수필]시련 1 / 김영관 시련 1 / 김영관 1975년 시월이었다. 나는 근무지를 울산시 언양면에서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산골이라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백일을 갓 넘긴 아이와 산후조리가 부실한 아내를 데리고 근무지로 향했다. 어렵사리 농가의 문간방 하나를 구했다. 시월 하순인데도 대관령 산골의 밤은 남쪽에서 듣고 온 것보다 훨씬 추웠다. 낮 기온은 15도까지 올라갔지만, 밤 기온은 영하 3도까지 내려갔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해 보온이 부실한 농가 문간방은 어른도 견디기가 버거웠다. 아이가 이틀째부터 기침을 시작했다. 진부면에는 병원이 없었다. 약방에서 약을 사 먹였지만, 기침은 점점 심해갔다. 코일형의 전기난로를 샀다. 밤낮없이 아이의 곁에 난롯불이 켜져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아..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125 다음